느낌
수원 화성 국제 연극제
낯선하루
2008. 9. 14. 14:43
내가 사는 고장에서 해마다 연극제를 한다.
매번 행사포스터만 보고 지나갔었는데, 올해는 챙겨보기로 했다.
팔월 보름에 시작해서 열흘간의 축제, 열두 번째 행사라니까 어느 정도 자리도 잡았을 것이고, 또한 야외 공연이 많으니 나름 재미있을 것도 같고...
대부분의 공연이 열리는 마당이 자전거로 20여분 거리여서 산책 삼아 다녀오기도 편하겠단 심정으로 한여름 밤의 연극축제를 내심 기대하였다.
걱정이라면 계속 해서 오락가락하던 비였다. 공연장이 야외이니 무대는 비에 대비를 했을 것이고, 난 가방에 우비와 깔개를 챙겨 들고 부지런히 공연장을 다녔다.
"수원 화성 국제 연극제"
제목에 거창하게 '국제'라는 단어를 넣은 만큼 몇몇 외국 공연단도 초청되었다. 다른 이들이 올림픽에 들떠있는 만큼 '연극제'에 들떠있었다.
그러나 연극제가 끝나기 전에 축제에 대한 내 관심은 서서히 멀어져 버리고 말았다. 마라톤이 끝나기도 전에 모든 채널의 올림픽 중계가 지겨워 지듯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고, 지극히 관급 행사에 대한 실망일 수도 있는 실망감.
실망감의 시작은 무대의 배치에서 시작되었다.
평지가 아닌 산자락에 마련된 무대들이기에 객석은 자연스레 무대 앞 잔디였다. 자연스런 분위기로 풀밭에 앉아 연극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
그러나 몇몇 무대는 비탈을 등지고 앉을 수 밖에 없는 힘든 자세로 연극을 관람하여야 한다. 공연 내내 뒤로 쏠리는 무게중심에 힘겹게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고역이다. 편안하게 무대에 몰입을 할 수가 없다. 게다가 객석의 대부분은 동네 어르신들과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가족들인데 과연 편하게 연극을 볼 수 있을까? 분명 객석은 고려하지 않은 무대 배치이다.
심지어는 객석의 한 가운데 앉았음에도 무대를 모두 바라 볼 수 없는 공연도 있다. 객석의 시야에서 사라져 저희들끼리의 공연을 펼치는 배우들......
한층 더한 것은 행사기간 내내 저녁만 되면 가랑가랑하던 비다. 낮 동안의 뜨거운 햇볕도 물먹은 잔디를 모두 말려 주진 못하였다. 비록 작은 돗자리를 나눠주어 비에 젖은 잔디에 앉지 않아도 되었지만, 진창이 되어 버린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구분이 없어 어두운 객석에서 관객들은 진창에 빠지기도 하는 등의 좀더 세심한 배려가 아쉬웠다. 과연 열두 해째를 맞이하는 행사일까?
일부러 개막행사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얼굴 내밀기 좋아하는 정치꾼들과 지방 유지들의 겉치레 인사까지 짜증내며 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국제 연극제답게 외국에서 초청받은 팀들의 공연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사꾼들... 역시 관급 행사의 특징을 그대로 살리는 연출이었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부가적인 것들이다. 비록 열두 해째라지만 관급 행사임을 감안하면 이 정도의 어수룩함은 관객이 참아야 하는 것이 현실 아닌가? 더욱이 무료 공연인데...
결정적으로 참을 수 업던 이유는, 연극제를 끝까지 즐거운 축제로서 즐기기 못한 나의 옹졸함은 프로그래머에 대한 실망이다.
연극제는 당연히 연극만 좋아도 된다. 그런데 미숙해 보이는 해외 팀들의 공연, 대학 아마추어 팀들의 경험쌓기 무대, 과연 야외 공연에 적합한지 의문이 드는 몇몇 공연들... 과 공연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한 오디오 및 자막관련 실수들은 연극 자체에 실망을 하게 해주었고, 결과적으로 열두 번째를 맞이 한다는 '수원 화성 국제 연극제'에 대한 커다란 불신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난 연극의 문외한이다. 그저 가까운 곳에서 무료로 한여름 밤에 연극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에 기분 좋게 축제를 즐기려 한 것뿐이다. 물론 재미있게 즐긴 공연도 물론 있다. 그리고 내가 보지 않은 공연도 있기에 모두 싸잡아 비판을 한다는 것도 옳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가까이에 이런 좋은 터전이 있다면 좀더 즐거운 방향으로 커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 여름 밤의 연극 축제"라는 것. 그 자체만으로 낭만적이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사는 고장뿐 아니라 바로 접한 몇몇 곳에서도 같은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아마도 시기와 이름들은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모두 연극에 관련된 관주도 행사들이다. 내 고장 축제도 열두 번째인데 처음 참석을 했으니 다른 고장 축제에 참석을 했을 리 없다. 그러나 비슷비슷하리라 본다. 벌써 몇 년째 진행되는 행사이지만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같다. 왜 그럴까?
내가 좋아하는 축제가 있다. 연극 축제이다. 비록 단 한 번 참여했지만, 평생의 추억으로 남아있을 뿐 더러 매년 유월이면 내 마음을 춘천으로 향하게 하는 '춘천마임축제'.
같은 축제인데도 왜 '춘천마임축제'는 내게 추억을 주고, '수원 화성 국제 연극제'는 실망을 주었을까?
자유로운 분위기를 살리는 데 성공한 축제.
곳곳에서 거슬리던 관급 행사다운 모습의 국제 연극제.
실외라는 특성에 맞는 다양한 공연들.
억지로 실외에 끼워 맞춘 듯한 실내용 공연들.
마임이라는 주제 안의 다양한 퍼포먼스(자연스런 마임의 확대 재생산).
과연 선정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한 프로그램들.
평지라 평안하게 앉을 수 있던 풀밭 객석
오르막이라 공연 내내 등이 아팠던 풀밭 객석
밤에도 화창했던 날씨
밤만 되면 부슬부슬 배우들이 안쓰러운 날씨
즐기면서 최선을 다하는 스태프의 열성
학교에서 끌려 온 듯한 스태프의 형식성
글쎄 내가 사는 고장의 축제가 미칠 듯이 즐길 수 있는 재미난 축제가 되었음 하고 바라는 것이 욕심일까?
그냥 한마디...
이왕 큰 예산 써가면서 하는 것이라면
관급 축제 즐~~!!
춘천 마임 축제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