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가버림

낯선하루 2008. 10. 31. 21:20
모닥불

타오르더니 불꽃
손에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선남선녀들
두 뺨을 물들이며 타오르더니
붉게 붉게 타오르더니

사위어가더니 불꽃
동그라미 그리며 부르는 선남선녀들
노랫소리와 더불어 사위어가더니
가물가물 사위어가더니

한줌의 재로 남더니 불꽃
재로 남아 눈앞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흩어지더니 사방으로 팔방으로 흩날리더니
하늘 높이에서 별이 되었나
선남선녀의 눈에서 반짝이는.

김남주 [나의 칼 나의 피] 실천문학의 시집 92, 1993


세월이 흐르니 같은 시(詩)가 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어찌보면 이 시를 쓴 김남주님에게 죄송스런 기분도 들고...

시월의 마지막 밤.
서양에서는 할로윈이라 한 바탕 시끄럽게 지세우는 밤.

아직 한 해가 가려면 60여일이 남은 밤인데,
이상스레 연말보다 오늘이 더 '가버림'이라는 낱말이 가슴에 꼭 박힌다.
그 옛날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때문에 그러 할지도...

"붉게 붉게 타오르더니
가물가물 사위어가더니
한줌의 재로 남더니 불꽃"

모낙불을 지피면, 그 사위어가는 불꽃을 차마 덮어버릴 수 없어
밤새도록 그 불꽃을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불꽃의 사그라듦에도 무심하고
가버림에도 무심하고
그저 가벼운 적막감으로 이렇게 가버림을 맞이 하고 있구나.

그래도 쓸쓸하다.
아직 내 가슴 속 불꽃이 다 사그라들지 않았음이구나.


지금의 시월의 마지막 밤이다.
아직 두 달의 되돌아 볼 시간이 남아있는 밤이다.